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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르타윌, 국적 없는 땅의 국제법적 지위

by sonomamoney 2025. 9. 16.

비르타윌은 이집트와 수단 사이 국경에 위치한 2,060㎢ 규모의 사막지대입니다. 특이하게도 두 나라 모두 이 지역을 자국 영토로 주장하지 않으면서, 오늘날 사실상 ‘주인 없는 땅(terra nullius)’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국제법적으로도 흥미로운 쟁점을 던지고 있으며, 학자와 연구자, 심지어는 일반인에게까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비르타윌의 국제법적 지위를 중심으로 역사적 배경, 법적 해석, 그리고 미래 가능성을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비르타윌의 역사적 배경과 영토 분쟁

비르타윌의 독특한 국제법적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이 지역은 19세기 말, 영국이 이집트와 수단을 식민지로 관리하던 시기 국경선 설정 과정에서 비롯된 문제에서 기인합니다.

 

1899년, 영국은 이집트와 수단 사이의 경계를 북위 22도선으로 정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행정적 편의를 이유로 1902년 경계 조정을 하게 되면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 결과, 수단은 비르타윌을 이집트 땅으로, 반대로 하일리브 삼각주(Hala’ib Triangle)는 수단 땅으로 편입시킨 겁니다.

 

이후 이집트는 하일리브 삼각주를, 수단은 비르타윌을 사실상 자국 영토로 보지 않는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특히 하일리브 삼각주는 전략적 가치가 높아 양국이 모두 탐내는 땅이 된 반면, 비르타윌은 황량한 사막에 자원도 부족하고 거주하기도 어려워 누구도 차지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즉, 두 나라의 영토 주장이 서로 상충하면서도 동시에 비르타윌에 대해서는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 특수한 현상’이 나타난 것이죠. 이 독특한 맥락 덕분에 비르타윌은 오늘날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가가 공식적으로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 땅으로 남아 있습니다.

국제법 관점에서 본 비르타윌의 지위

비르타윌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개념은 ‘무주지(無主地, terra nullius)’입니다. 이는 어느 국가도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거나, 법적으로 주권이 미치지 않는 땅을 의미합니다. 역사적으로 호주 대륙이나 남극 일부 지역이 이런 개념으로 언급된 적이 있지만,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며 국제 조약이나 국가 주권 하에 편입되었습니다.

 

비르타윌의 경우, 국제법적으로는 복잡한 해석이 필요합니다. 첫째, 이집트와 수단 모두 ‘하일리브 삼각주’를 차지하기 위해 각자의 논리를 주장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가치 없는 비르타윌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국제 사회에서도 명확한 주권 주체가 없는 지역으로 분류됩니다.

 

둘째, 비르타윌에 개인이나 제3국이 주권을 주장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제기됩니다. 실제로 2014년 미국의 한 남성이 이곳에 깃발을 꽂고 "왕국"을 선포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국제법적으로 전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국제법은 ‘국가로서의 요건’을 매우 엄격히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몬테비데오 협약에 따르면,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영토, 국민, 정부, 국제사회와의 외교 관계라는 4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비르타윌 자칭 국가들은 이 조건을 전혀 만족하지 못합니다.

 

셋째, 국제기구인 UN도 비르타윌을 특정 국가 영토로 분류하지 않으며, 사실상 영토 분쟁의 ‘부수적 결과물’로 취급합니다. 즉, 이 지역은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지만, 동시에 개인이나 다른 국가가 새롭게 소유권을 주장할 수도 없는 법적 공백지대에 놓여 있는 셈입니다.

비르타윌의 미래 가능성과 국제적 의미

그렇다면 비르타윌은 앞으로 어떤 가능성을 가질까요? 우선 현실적으로는 주변국인 이집트와 수단의 관계 변화에 따라 지위가 달라질 가능성이 큽니다. 예를 들어 양국이 하일리브 삼각주 문제를 협상 과정에서 해결한다면, 비르타윌의 소속 문제도 동시에 정리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양국 모두 비르타윌을 자국 영토로 적극 주장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첫째, 경제적 가치가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사막 기후와 척박한 환경 탓에 농업은 불가능하고, 아직까지 확인된 자원도 거의 없습니다. 둘째, 만약 비르타윌을 주장하게 되면 국제법적으로 하일리브 삼각주를 포기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전략적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다만 국제사회에서는 비르타윌을 국제법 교재나 연구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례로 다루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세계 대부분의 땅이 이미 국가 소유로 분류되는 상황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무주지’가 거의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비르타윌은 국제법, 정치학, 지정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살아 있는 사례 연구의 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개인들이 ‘비르타윌 왕국’을 세웠다며 선전하거나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는 일들이 종종 벌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는 법적 효력이 전혀 없지만, 대중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문화 현상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결국 비르타윌의 미래는 두 가지 길 중 하나일 것입니다. 하나는 지금처럼 무주지로 남아 국제법적 토론 소재로 활용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집트와 수단이 관계 개선을 통해 영토 문제를 재정립하면서 자연스럽게 소속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비르타윌은 앞으로도 국제법 연구에서 빠지지 않을 독특한 존재로 남을 가능성이 큽니다.

 

비르타윌은 작고 황량한 사막이지만, 국제법적으로는 매우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국가의 영토는 반드시 명확히 소유되어야 하는가? 무주지 개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가? 개인이 새로운 국가를 세울 수 있는 여지는 없는가? 현실적으로 비르타윌은 큰 전략적 가치나 자원이 없어 당분간 지금의 상황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이 땅이 존재하는 한, 국제법의 틀을 시험하는 사례로 계속 연구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도 비르타윌을 통해 ‘국가와 영토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비르타윌 사진
비르타윌